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대전광역시 중구

유회당

우리조상의 집터 고르기 유희당

배산임수(背山臨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했던 우리 선조.
배산임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삶의 터전을 찾고자 하는 선조들의 지혜였으며, 외래 주거문화가 판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 정신은 주거지 선택 제일의 고려사항이다.

사진1

사진1 - 유희당 전경. 왼쪽이 안채, 오른쪽이 사랑채다.

그냥 눌러 앉아 살고 싶은 곳

뒤로는 산이 있고 그 아래 양지바른 평지가 펼쳐지며 가까이 평지 너머에 개울이나 강, 호수가 있다면. 즉, 산을 뒤로하고 대지와 물을 바라볼 수 있는 양지바른 곳이라면, 길을 가다가도 잠시 앉아 쉬어가고 싶은 아늑한 곳일게다. 잠시만이라도 쉬어가고픈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산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집 앞의 대지는 농토 일구어 문전옥답 만들고, 농토에 물대기 좋을 만큼 흐르는 물길이 있는 곳. 중구 무수동에 그런 곳이 있다.

사진2

사진2 - 무수동 유희당 가는 길. 유희당이 위치하고 있는 무수동은 보문산 남쪽자락 아늑한 터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중구의 명산 보문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자락을 남쪽으로 내려 사람 삶의 터전으로 내어주는 곳. 그 아래 펼쳐진 대지와 그것을 적시며 흐르는 물길이 있어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마을 무수동의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은 배산임수의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마을의 중심 아늑한 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진3

사진3 - 유희당 풍경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그리고 정원

“정조 22년(1766)에 중건 당시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은 사랑채, 안채, 사당, 곡간, 행랑채와 아울러 사랑채 앞에 화단과 연못을 만들고 연못 주변에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함과 아울러 연못가에 정자를 세웠다.”는 기록과 아울러 “1962년 이 정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대전시로부터 보호수로 지정받게 되는데 당시 은행나무의 수령은 250년, 종가일원을 처음 지은 연대와 일치한다.”고 전하고 있다.

사진4

사진4 - 25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집 앞 정원에서 자라고 있다.

연못가에 세워진 모정의 아래로 수로를 내어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은 우암 선생이 말년에 지은 남간정사의 정원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남간정사의 연못에 흘러드는 물은 강학공간인 대청 아래로 흘러드는 물과 계족산 쪽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흘러드는 물로 채워지는 자연 그대로의 물길을 이용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정원이 위치하고 있는 지형적 환경도 많이 다르고 수로 또한 사람 손을 써서 냈으니 비교함에 있어 무리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암 선생의 국가적, 지역적 명망을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 말년에 낙향하여 1683년에 조성된 남간정사의 정원에 비해 24년 후인 1707년에 건립되었으니 수로의 배치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 그 유래를 한번 곱씹어 볼만하다.

사진5 - 유희당 앞의 정원.

  • 사진5/유희당 앞의 정원.
  • 사진6/유희당 정원의 연못과 모정 풍경. 연못에서 모정 아래를 지나 흐르는 수로가 조성되어 있다.
  • 사진7/연못에서 시작하여 모정 아래를 지나는 수로. 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의 정원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 사진8/모정에 오르면 주변이 평지여서 마을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유회당 종가의 사랑채, 안채, 사당

중건당시와 달리 지금의 유회당종가에는 사랑채와 안채, 사당, 연못, 모정 등이 남아있다. 부엌 위로 누다락을 들인 안채의 부엌은 낮은 천정을 보상하기 위하여 바닥을 낮춘 점과 안채의 윗방 반칸 만큼 뒤란 쪽으로 돌출시켜 공간을 확보해 협실을 낸 점이 볼만하다. 사대부가의 집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집의 쓰임새를 극대화 시킨 점이 돋보이는 안채는 ‘ㄱ'자 집으로 부엌과 연이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대청을 낸 구조이다.

사진9 - 안채 전경.

  • 사진9/안채 전경.
  • 사진10/안채 뒤란에서 바라본 안채 전경. 왼쪽의 건물은 사당이다.
  • 사진11/안채의 윗방 반칸 만큼 뒤란 쪽으로 돌출시켜 공간을 확보해 협실을 낸 점이 볼만하다.
  • 사진12/부엌 위로 누다락을 들였다.

종가의 사랭채는 앞면 2칸 옆면 2칸 홑처마 팔작집이다. 사랑채 역시 사대부가의 집 치고는 소박하게 지은 편이다. 서쪽 끝의 1칸 전부는 온돌방을 들여 큰사랑방을 만들고 동쪽 끝 1칸은 대청을 들인 이 집은 가운데 2칸을 퇴칸으로 하여 마루 삼고 그 나머지는 작은사랑방을 들인 집이다.

사진13 - 사랑채 전경.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이다.

  • 사진13/사랑채 전경.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이다.
  • 사진14/사랑채 앞면
  • 사진15/사랑채의 대청 쪽에서 바라본 풍경. 사랑채 뒤로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 사진16/사랑채의 대들보는 옛것 그대로 남아있어 고택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사랑채 뒤에 위치하고 있는 사당은 곡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꾸밈이 없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집으로 지어진 사당의 문은 판문을 달아 장식성 또한 없지만 판문을 기둥에 직접 달지 않고 판목과 부재를 덧대어 문지방 위로 문의 지지대를 만든 다음 그 지지대에 대문을 단 뜻은 제를 지낼 때 문을 180도로 활짝 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 실용성을 살리면서 사당의 외부를 소박하게 처리하고 있다.

사진17

사진17 - 양쪽이 협문인 삼문구조로 지어진 사당의 외양에서 조상을 모시고 있는 사당임을 집작할 수 있다.

사당에서 눈여겨 볼 것은 들보와 대공, 도리, 서까래 등 천정을 구성하는 부재를 모두 드러내고 있는 옆면이다. 속내 모두를 드러낸 채 마감한 옆면의 모양새가 오히려 건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18

사진18 - 의도적인 건축미를 보여주는 사당의 옆면

문화재 정보(출처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종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 명칭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 (安東權氏有懷堂宗家一圓)
  • 분류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 소재지대전 중구 무수동 94
  • 수량/면적/지정(등록)일5동/안채:117.7㎡, 89.1㎡,사당: 63.1㎡, 모정19.4㎡,연지:77.9㎡ / 2001.06.27
  • 문의대전광역시 중구 문화체육과 042-606-6284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權以鎭, 1668∼1734)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유회당 종가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 가옥은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하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산과 내를 벗하여 생활함으로써 청결하고 참된 선비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활철학이 담겨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규모를 작게 하고, 건물간의 사이 공간을 여유롭게 배치한 유회당 종가는 낮은 잡석 기단 위에 구성한 'ㄱ'자형 안채의 온건함, 아담한 크기의 사당, 마을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여지는 모정, 그리고 자연공간과 어울린 정원 등이 다양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총무국 > 문화체육과 > 축제담당 연락처 : 042-606-6292 최종수정일 : 2017-07-28
위로